좋은 인연과 함께 세운 나의, 우리들의 등대

작성일
2023-11-24 09:30:53
작성자
도시재생지원센터
조회수 :
22

첫 번째 둥둥마켓 단체사진. /둥둥마켓 기획팀

첫 번째 둥둥마켓 단체사진. /둥둥마켓 기획팀

| 올해 북페어·생활 눈 코 뜰 새 없었지만
| 팜프라 도움으로 도시재생 사업 참여
| 일반적인 형태와 다른 장터 꾸려나가
| 동료들과 즐겁게 한 해 마무리할 것

(사진1. 첫 번째 둥둥마켓 단체사진. /둥둥마켓 기획팀)
올해는 정말이지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유독 일복이 많아서 그랬을까. 역대 최대 규모의 행사 기획과 운영, 9개월간의 청소 알바, 일주일간의 식당 알바, 행사 단기 알바, 각종 기고와 워크숍, 출강 등…. 책방 살림을 이어가기 위해, 지인의 부탁으로, 급하게 돈이 필요해서. 그때그때 일의 성격도 난이도도 다 달랐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거절하지 않고 다 했다. 돈이 필요해서기도 했거니와 나의 능력치와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품을 들였던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연 행사 기획이 아닐까. 9월에 열었던 <남쪽바다책잔치> 말고도 장기 프로젝트로 참여한 행사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남해섬 둥둥마켓>. 둥둥마켓은 책 잔치를 함께 준비했던 팜프라와 의기투합하여 진행한 행사이다. 2023 남해군 도시재생 문화행사의 하나로 시행된 둥둥마켓은 남해군이 주최하고 남해군도시재생지원센터가 주관을 맡았으며 팜프라, 공희공방, 아마도책방, 문화엔터프라이즈가 기획과 운영을 맡았다. 8월부터 현재까지 총 5회를 진행했고 이제 마지막 12월 마켓만 남겨두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이 프로젝트 참여를 제안받았을 때 조금 주저했다. 대관(對官) 업무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이미 계획되어 있던 책 잔치 준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했기 때문. 매사 잘하고 싶어서 있는 에너지를 다 쓰고 고갈되기를 반복하는 내 멘털과 깜냥으로 과연 멀티 태스킹이 가능할까. 다행히도 팜프라 친구들이 총대(?)를 메겠다고 나서주어서 나는 숟가락 얹듯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만남으로 일상 긴장 풀어내는 둥둥마켓

둥둥마켓은 매월 첫째 주 금·토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남해읍 옛 화전별당 자리에서 열리는 야간 플리마켓으로, ‘바다 위를 둥둥,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으로 일상의 긴장을 느슨하게 풀어내는 장이다.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일상에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가는 자리가 되길 바라며 기획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플리마켓이 아니라,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하고 싶었기에 마켓과 함께 진행되는 공연과 토크 및 경매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작은 동네 축제가 열리는 셈이다.

중심이 되는 마켓은 청년 셀러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의 장이 되길 바랐다. 평균적으로 15~20개 팀이 참여하고, 마켓 시작 전 간단한 도시락과 음료를 나누며 서로를 소개하는 소셜 다이닝 시간도 가진다. 마켓에 방문하는 손님들도 중요하지만, 부스를 지키는 셀러들도 중요하기에 불편한 점이 없도록 꼼꼼하고 살뜰하게 챙긴다. 참여하는 셀러들은 먹거리와 공예품 부스부터 체험 부스와 사진 부스까지 때마다 조금씩 변화는 있어도, 늘 겹치는 부분 없이 다채로운 조화를 이룬다.

마켓 초반 대부분의 셀러가 남해 로컬 청년들이었는데, 5회 차를 맞이한 지금은 삼천포, 사천, 더 멀리 통영에서도 참가하는 셀러가 생겼다. 옆 부스에 앉게 되면 자연스럽게 통성명하고, 3시간 동안 더위나 추위, 혹은 빗방울, 한산함 같은 것들과 함께 싸우며 금세 친해진다. 기존 셀러와 신규 셀러의 비율은 7:3 정도로 기존 셀러가 항상 더 많다. 나 역시 셀러로서 책 보따리를 이고 지고 전국을 다닌 경험이 있어서 셀러들의 노고를 잘 안다고 자부하는데, 매월 진행하는 행사에 부담이 있을 텐데도 자리를 지켜주려 꾸준히 와주는 셀러들이 많아 감사하다.


(사진2. 첫 번째 둥둥마켓 공연 '신나는섬'. /둥둥마켓 기획팀)
◇아티스트 공연 둥둥스테이지

‘안정과 위로, 에너지’를 키워드로 하는 둥둥 스테이지는 마켓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아티스트들의 공연으로 채워진다. 지금까지 조준호, 이성우, 신나는섬, HOOLA, 김효동 재즈 콰르텟, 여유와 설빈, 이내, 강태구, 차빛나가 왔고 12월에는 강아솔과 예람의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대중이 아는 유명한 곡, 요즘 유행하는 커버 곡 위주로 불러달라고 요청하는 다른 행사와는 달리, 우리 마켓의 담당자는 가능하면 자신이 만든 음악을 들려줄 아티스트를 최우선으로 섭외 메일을 쓴다고 한다. 셀러들도, 아티스트들도 각자 자신이 만든 작고 소중한 이야기들을 가지고 와 풀어놓는 아름다운 광경은, 종일 바쁘게 움직이던 와중에도 놓치지 않고 음미해야 하는 귀한 장면이다.

(사진3. 세 번째 둥둥토크. /둥둥마켓 기획팀)

공연이 끝나면 곧이어 토크와 경매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토요일에는 셀러들의 사연이 담긴 물품을 판매하는 김진실의 둥둥경매가, 금요일에는 내가 마이크를 잡는 둥둥토크가 진행된다. 둥둥토크는 남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시골 생활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눠보는 캐주얼 토크쇼다. 매월 주제를 정하여 두 명의 패널을 섭외하고, 지금까지 ‘집’, ‘일’, ‘취미’, ‘라이프스타일’을 주제로 네 번의 토크를 진행했다. 전문 패널이 아니라서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는 대부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데, 그건 초보 진행자인 나도 마찬가지. 그러나 우리는 남해라는 이름 아래 하나 되는 사람들. 섭외한 패널 모두 작고 작은 동네 어딘가에서 한두 번 이상은 반드시 마주친 우리 주변의 이웃, 친구, 동료들이기 때문에 대화를 이어 나가다 보면 곧 친밀감이 형성되고, 평소에는 들을 수 없었던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에 금방 빠져들고 만다.

◇양극단 상황 질문으로 함께한 밸런스 게임

토크의 백미는 단연 밸런스 게임인데, 질문은 패널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미리 알려주지 않고 현장에서 공개된다. 주제와 관련해 극과 극의 두 상황을 가정한 질문을 던지고 패널과 관람객 모두가 손을 들어 우열을 가려보는 즐거운 시간이다. 누구나 선택지를 고를 수 있어 참여도가 높고, 결과에 따라 호응도 좋아 중간중간 웃음이 많이 터진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패널에게 건네는 인터뷰용 질문보다 밸런스 게임 질문 준비에 몇 배는 더 정성을 쏟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집’이 주제였던 첫 번째 토크에서는 ‘바다 전망인데 습도가 높아서 매일 곰팡이 피는 집 vs. 남해 금산 전망인데 매일 벌레 한 마리 이상 나오는 집’ 중 어떤 집을 고를 것인지 질문을 던졌다. 극악의 난도를 자랑해 상당수가 (진짜로 당장 그런 집에 살게 되는 것도 아닌데) 진지한 표정으로 신중하게 손을 들었다. ‘취미’가 주제였던 세 번째 토크에서는 ‘(취미 분야) 세계랭킹 1위와의 일대일 레슨 기회 vs. 사랑하는 아내와의 15주년 결혼기념일’ 중 어떤 이벤트를 선택할 것인지 질문했다. 이 역시 극악의 난이도가 예상되는 회심의 한 방이라 생각하며 질문을 만들었건만, 결혼 10년 차 이상 두 남성 패널의 반응은 어땠겠는가. 질문을 채 다 읽기도 전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세계랭킹 1위와의 만남에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좌중 모두를 폭소케 했다. 앞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실시간 관람 중이었는데도 말이다. (아아, 결혼생활은 이런 것이었구나!)

마켓 시작 시각은 오후 6시지만 기획팀은 항상 오후 2시쯤 모여 행사 세팅을 시작한다. 회차를 거듭해 가며 일이 손에 익을수록 서로 간의 합도 잘 맞아, 부스를 설치하고 무대를 세팅하고 등대를 옮기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다. ‘내년에는 행사 대행사를 차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까지 곁들일 여유가 생겼다. 둥둥마켓의 상징인 등대는 5m에 육박하는 나무 조형물로, 팜프라와 공희공방의 작품이다. 처음엔 등대뿐이었다가 깃발도 생기고, 진짜 등대처럼 빛을 쏴주는 조명도 추가되며 완성형을 갖췄다.

(사진4. 세 번째 둥둥마켓 단체사진을 등대앞에서 찍고 있다. /둥둥마켓 기획팀)

가장 최근에는 등대 안에 들어가 나에게 등대가 되는 존재에 대해 적어 보는 관람객 참여 코너를 만들었다. 이제는 손때가 제법 묻은 우리의 등대 안에, 나도 들어가 옹기종기 매달린 작은 나무 팻말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두운 밤, 항해하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바다를 비춰 주는 존재, 등대. 당신에게 등대가 되는 존재는 무엇인가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세 치즈 고양이’라고 적고 나왔지만, 사실 미처 적지 못한 말이 있다. 나에게 등대가 되는 존재는 바로, ‘둥둥마켓을 함께 준비한 동료들’이라는 것. 

두고두고 꺼내 먹을 추억을 잔뜩 만들어 준 둥둥마켓.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12월의 첫날에 진행되는 올해 마지막 둥둥마켓에도 동료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즐겁게 임해야겠다.

출처 : 경남도민일보(https://bit.ly/40UIRvy)
/박수진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