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굴(聖明掘)

작성일
2010-07-06
이름
관리자
조회 :
2677
율도리 마을 뒷산 암벽에 천연적으로 뚫어진 굴로 이곳의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옛날 성인
들이 이곳에서 기거하였다 하여 성명굴이라 마을사람들이 불러오고 있다.
전해지는 전설에 의하면 옛날 성명굴에 승려 한 분이 열심히 불경공부에 임하고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이 굴의 내부에 뚫어진 새끼 손가락만한 구멍에서 쌀이 나오므로 승려는 탁발을
하지 않고도 지냈다고 한다. 신기한 것은 마을주민이 불공을 드리려 가면 사람의 숫자만큼
쌀이 나와서 공양 걱정을 하지 않았다.
3사람이 불공을 드리러 가면 3사람 몫의 쌀이 나오고, 10사람이 불공을 드리려 가면 10사
람 몫의 쌀이 나와 공양 걱정 없이 몇 년을 잘 지내 오던 어느 날 행자승(상좌승) 한 분이 이
굴을 찾아와서 같이 불경공부를 하였는데 이 행자승이 온 이후부터는 미혈구에서 매 끼니 2
인분 밖에 쌀이 나오지 않기 시작했으며 주민이 불공을 드리러 가도 쌀은 여전히 2사람 몫만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당초부터 이 굴에서 공부하던 승려는 자기의 정성이 지극하지 못하여 옛날같이 쌀
이 안 나온다고 믿고 더욱 열심히 불경을 외우고 정성을 다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 굴 구멍
에서 쌀이 나와 공양 걱정 없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는 소문이 각지에 퍼져 나가게 되어
이 굴을 찾아오는 행자승은 자꾸만 늘어 갔으나 미혈구에서는 여전히 끼니당 2사람 몫의 쌀
밖에 나오지 않았으므로 늘어나는 행자승의 공양을 세월이 흐르면서 하루 3끼에서 2끼로 또
한끼로 나중에는 죽으로 공양을 하는 지경이 되었다.
당초의 승려는 제일 먼저 찾아온 행자승이 불결하고 공부가 적어 산신령이 노하여 쌀을 적
게 나오게 한다고 믿었다. 그는 모든 행자승을 모아 놓고 자기가 지금까지 지내온 내력과 미
혈구의 이야기를 한 후 처음 행자승이 온 이후로 쌀이 2사람 몫만 나오게 되었으니 이 행자
승을 다른 곳으로 보내던지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곁에 있던 행자승들이 그 사람은 공부도 적고 불결하여 산신령이 노한 것이 분명하며 다른
곳으로 보내도 역시 불결하고 공부가 적어 그 곳 산신령도 노할 것이므로 이곳에서 죽이자고
말을 하였다.
이에 승려는 행자승을 굴의 바닥 한 가운데 있는 맷돌에 갈아 죽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그 행자승을 죽이고 난 이후부터는 미혈구에서 쌀이 나오지 않고 차가운 물이 나
오기 시작했다. 이에 승려와 행자승들은 자기들의 잘못을 깨닫고 각기 흩어져 갔다고 한다.
지금도 성명굴의 바닥에는 맷돌이 있으며 미혈구에서는 물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이 장소
에 율도 출신으로 부산 동래에 거주하다 사망한 정태용씨가 암자를 창건하여 성명사로 이름
지었다. 당초의 성명굴에는 성명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도 절터가 그대로 보전되고
있다.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어느 날 서당에 다니는 동자 수십 명이 이곳에 와서 제기를 차고 놀면서 불상들을 요절내
었다고 하는데 이 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가서 모두 죽었다고 전하며, 또 고순에 살고 있던 박
씨 내외는 자식이 없어 한탄하다가 이곳에 와서 헌공하였더니 남아를 탄생시켰다는 전설이
있어 자식 없는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헌공하는데 줄을 이었다 한다. 그러던 중 거처 불명한
사람이 와서 불상 6개를 모두 가져가 버리는 불행을 겪게 되고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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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과 후생팀(☎ 055-860-3121)
최종수정일
2019-07-02 09: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