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곶이 수중명당

작성일
2010-07-06
이름
관리자
조회 :
2428
장포리는 긴 개로 이루어져 장포라고 하는데 창선면 진동리에서 분동되었다. 이곳 장포 끝
장곶이에 동메가 있는데 이 동메를 거북산이라고 한다. 이 거북산은 바다를 보고 내려가는
형국이고 풍수설에 의하면 묘자리가 바다 물 속에 있다고 하여 옛날 한 풍수가 보재기(잠수
부)를 보고“물밑에 잠수를 해서 들어가면 반드시 돌로 새긴 부처가 있을 것이다. 내가 주는
이 고리 두 개를 가지고 물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는 왼쪽에 걸고 하나는 오른 쪽에 걸어라”라
고 신신당부 했다.
보재기는 물 속으로 내려가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이건 분명히 무슨 곡절이 있는 것
이니 이럴 바에는 고리를 바꾸어 걸어 놓기로 결심하고 계속 물 속으로 내려갔다. 과연 무시
무시한 돌부처가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데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앞에서는 고
리를 도저히 못 걸겠고 뒤로 돌아가서 걸었는데 보재기 고리는 왼쪽에 걸고 풍수 고리는 오
른쪽으로 걸었다. 앞에서 보면 정반대 현상이다. 고리를 건 보재기는 물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보재기에게 풍수는 고리를 시킨 대로 걸었느냐고 물으니 보재기가 말하기를
도저히 무시무시해서 시키는 대로 걸지 못하고 뒤로 돌아가서 걸었는데 내 것은 왼쪽에, 풍
수 것은 오른쪽에 걸었다고 했다. 그러자 풍수는 호통을 치면서 다시 들어가서 바꾸어 걸어
라고 했다. 다시 보재기는 물 속으로 들어가 험상궂은 부처를 찾으니 온데 간데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보재기는 물 속에서 나와서 사실대로 말하니 풍수는 한탄을 하면서“임자
는 따로 있는거야!”라며 탄식을 하였다.
그 후 보재기 집안은 날로 번창하고 풍수 집안은 가운이 기울어졌다고 한다. 보재기는 고
리를 부처에게 걸면서 자손의 번창과 큰 인물이 태어나도록 마음 속으로 빌고 빈 것이 틀림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보재기 집안에서 태어난 후손 중 뜻밖에도 조선 말기 삼남지방과 전국을 휩
쓴 괴도 영숙이란 사람이 있었다. 영숙은 남해 출생으로 조선말 탐관오리 등이 서민들에
게 갖은 횡포를 자행하던 타락시대에 신출귀몰하게 고관과 부자집만 귀신같이 재물을 탈
취하여 불쌍한 서민들에게 양곡과 금품 등을 주었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각처에 방을 붙
여 괴도 영숙을 체포하라는 영을 내렸으나 신과 같은 영숙을 체포하기란 뜬 구름 잡기와
흡사하였다.
탐관오리들이 불쌍한 백성들에게 갖은 중상모략으로 수탈해 모은 재물을 다시 찾아 서민
에게 돌려주는 것이 무슨 죄인가? 그리하니 영숙은 서민들로부터 우러러 보였고 모이는 사
람마다 영숙의 얼굴이라도 한 번 보았으면 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따라서 탐관오리 고관 관리 집은 나졸과 하인들이 겹겹이 집을 에워싸고 철야 철통같이 경
비를 하였으나 날이 새고 나면 귀신도 모르게 재물을 도둑맞고 말았으니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불쌍한 서민 집에는 누가 두고 갔는지 모르게 금·은 보화 등 재물이 부엌
또는 방에 놓여 있었다.
오늘은 동쪽, 내일은 서쪽 등으로 사방을 다니면서 고관 탐관오리 집만 털고 다녔으니 과
히 영숙은 괴도였다. 탐관오리들은 주막이나 길거리에서 서민들의 얘기 속에 영숙 소리만
나와도 놀라서 오금이 떨어지지 않는 형국이었다. 오늘은 삼남 김부자 ○○○나리 집이 털
렸는데 내일은 또 누구 집이 털릴까? 그러하니 고관 탐관오리들은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고
수심에 잠겼다.
반면 백성을 위하고 국사를 바르게 하는 고관 집은 절대로 침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운
이 다했는지 혹은 목적을 다 했는지는 모르나 진주 감영에서 의도 영숙은 시경(사형 집행인)
의 칼날에 운명을 마쳤으니 백성들의 마음이야 얼마나 슬펐겠는가?
사형이 오전에 집행되었다는 소문이 진주 장안에 자자하게 퍼졌는데 점심 때 어떤 주막에
웬 건장하고 우람한 사나이가 주모에게 술 두 사발을 주라고 하여 술을 주니 단숨에 마셔 버
리고 주모에게 부엌칼 한 자루와 숫돌을 가져오라기에 주모가 깜짝 놀라 연유를 물으니“내
가 바로 영숙이란 의적이요”라고 하니 주모가 얼른 칼 한 자루와 숫돌을 주었다. 영숙은 칼
을 시퍼렇게 갈고 또 갈았다.
그러던 중 주모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영숙은 온데간데 없고 숫돌만 그대로 있었다. 하
도 신기하고 이상하기에 주모가 거리로 와서 사실대로 말하니 모두가 정말 귀신같은 영숙이
다 라고 하였다.
오전에 사형이 분명히 집행되었다고 방을 보았는데 살아 있다니 아마 주모가 망령이 들어
헛소리 한다고 했다가 도리어 호통만 당했다고 한다. 조금 후에 장안이 벌컥 뒤집혔다. 영숙
을 칼로 목 베어 죽인 시경 두 명이 목이 잘려 죽었다는 것이다. 정말 신통하고 귀신이 놀랄
일이다.
이와 같이 영숙은 죽어서도 혼백으로 탐관오리들을 혼내 주었으니 과히 당대의 의도요 정
의인이요 도탄에 헤 메이는 백성을 구제한 의로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출생지는 남해군 삼
동면이었다고 한다.
남해군 창선면 장포리 장곶 동메를 지금도 수중명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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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2019-07-02 09:2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