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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대웅전1

상세정보

  • 명칭 : 용문사 대웅전
  • 위치 : 이동면 용문사길 166-11
  • 문의 : 문화체육과 문화재팀
  • 전화 : 055-860-8631
  • 지정 : -
  • 수량 : 1동(191㎡)
  • 시대 : 조선시대

상세내용

다포집으로 공포에 네 마리의 용이 조각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법당 건축을 보여주는 건물.
용문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금산에 세웠다는 보광사(普光寺)를 후에 이곳에 옮겨 지은 것이라 전하고 있다. 1660년(현종 원년) 남해현의 유림들이 보광사의 입구가 향교와 면대하였다고 이건하라고 하여 백월대사(白月大師)가 용소마을 위쪽에 터를 정하고 용문사를 창건했다. 처음에는 첨성각만이 있었으나, 1661년(현종 2)에 신운화상이 탐진당을, 상법화상이 적묵당을 지었다. 이렇게 절의 규모가 커지자 이곳이 보광사보다 좋은 곳이라 하여 1666년(현종 7) 백월대사가 주재하고 일향화상이 화주가 되어 대웅전을 창건하고 성암화상이 봉서루를 세워 도량을 장엄하고 산 아래 용연(龍淵)이 있어 용문사(龍門寺)라 이름하였다. 지금의 대웅전은 1703년(숙종 29)에 승화스님이 중창하였다. 용문사 대웅전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은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다포계 팔작지붕 목조와가이다. 기둥은 대체로 낮고 가운데 부분이 조금 볼록한 배흘림 기둥이다.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으로, 앞면의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2구씩 공포를 배치하였다. 처마 밑에는 절의 이름에 어울리게 네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앞면에 있는 두 마리의 용머리는 뒷면에 있는 용꼬리와 함께, 모서리에 있는 두 마리의 용머리는 대각선을 가로질러 뒷면의 용꼬리와 합하여 완전체를 이룬다. 대웅전 내부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대웅전에 용을 조각하는 이유는 물에서 사는 용을 통해 화재를 방지하고자 하는 생각과 함께 용이 이끄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을 타고 영계(靈界)의 바다를 건너 극락정토로 가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이기도 했다. 용 외에 공포 부분에는 연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겹처마 건물로 덧서까래[부연]가 길어서 전체적으로 지붕이 위로 휘어져 들려보이며, 네 귀퉁이에 추녀를 받치는 기둥인 활주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앞면을 제외한 세 곳의 외벽에는 선종에서 본성을 찾는 것을 동자가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수행단계를 10단계로 하는 심우도[십우도]가 그려져 있다. 내부의 불단 위에는 화려한 닫집을 달아 장엄하였다. 수미단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좌우보체로 모신 아미타삼존불과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한 신중들의 후불탱화가 화려하다. 용문사 대웅전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법당 건축을 보여주는 건물이다. 용문사 대웅전 앞뜰에는 괘불대 두 개가 있다. 초파일 등 불자들이 많이 운집하는 날에 사용하는 괘불탱을 걸 수 있는 기둥을 지탱하는 괘불대가 남아 있다는 것은 남해 용문사가 대단히 중요하고 큰 절이었으며, 야단법석(野壇法席)이 자주 열렸음을 증명하고 있다.

주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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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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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

담당부서 :
문화체육과 문화재팀( 055-860-8631)
최종수정일 :
2020.10.23 15: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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