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내용
외세를 배격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상징물.
척화비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 및 전국 각지에 세운 비다. 낮은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맨 위에 지붕돌을 올려놓아 다른 척화비와는 다른 모습이다.
내용은“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吾萬年子孫 丙寅作辛未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오 만년자손 병인작 신미입)”풀이하면“서양 오랑캐가 침략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자는 것이고 화해하자는 것은 곧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라고 큰 글로 쓰고“만년에 훈계하노라 병인년에 만들고 신미년에 세운다”라고 작은 글씨로 좌측에 새겨져 있다.
척화비를 일제히 세우던 1871년(고종8) 4월에 함께 세운 것으로, 대원군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납치된 후 세계 각국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대부분의 비들이 철거되었으나, 이 비처럼 몇 기의 비들이 여전히 남아 그속에 담긴 역사적인 의미를 말해 주고 있다.
처음 입석되었던 곳은 노량 선착장 입구였으나 일제강점기 때 무관심 속에 묻혀 있던 것을 향인이 설천중학교 입구에 이전 보전하였다. 1998년 8월에 남해군과 남해문화원에서 옛 자리와 가까운 마을 안으로 옮겼다가 남해 충렬사 성역화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다시 현 위치에 이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