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읍 섬호(蟾湖)마을

작성일
200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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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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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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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읍 섬호(蟾湖)마을

남해읍 섬호(蟾湖)마을

우리마을 <12> 남해읍 섬호(蟾湖)마을
오는 23일 마을회관 준공식 잔치 준비로 바빠
[172호] 2009년 09월 30일 (수) 12:22:27 김광석 기자 메일 kgs@nhtimes.co.kr

재부섬호향우회는 가장 모범적인 향우회로 정평
돌꼬막ㆍ자연산굴 소득 높아져 하수처리장 절실

 

섬호마을 현황
ㆍ행정리 : 남해읍 입현리 섬호마을
ㆍ인구 : 122명(남 53, 여 69)
ㆍ세대수 : 58세대
ㆍ마을임원
이장 정연식, 개발위원장 겸 어촌계장 조현태, 새마을지도자 채현우, 노인회장 조평래, 청년회장 조현환, 부녀회장 백복덕
ㆍ키워드 : 방포, 적개, 곽창우, 두꺼비, 돌꼬막, 굴, 밥무덤, 당산제, 마을회관 신축, 재부남해섬호향우회, 경노사상, 하수종말처리장, 해안도로, 입현리4개마을체육대회, 조현종, 친환경유자농원     

 

 

   
▲ 섬호마을 정연식 이장.
섬호마을은 한자식 이름이지만 이름이 참 예쁘다는 느낌이 든다. 섬(蟾)자의 의미는 두꺼비나 달, 호(湖)자의 의미는 호수나 고을이름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섬호마을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두꺼비마을이 될 것이다. 두꺼비마을이라는 애칭을 사용한다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

우리는 두꺼비에 대해 왠지 복스럽고 성스럽고 뭔가 좋은 일을 가져다주는 영물이라고 생각한다. 개구리는 함부로 다뤄도 두꺼비는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만약, 섬호마을이 마을홍보를 위해 마을의 상징적 이미지를 구축하려한다면 두꺼비라는 확실한 상징물이 있기 때문에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두꺼비는 친환경적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두꺼비를 홍보에 활용하면 친환경마을이라는 이미지를 쉽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만 해도 섬호마을은 선조들이 복을 마련해놓고 간 마을이라고 해도 좋을 터이다. 
        

 

두꺼비 蟾자 마을

 

   
▲ 섬호마을 전경.

섬호마을 주민들은 오는 23일(금) 오전 11시에 마을잔치를 연다. 농번기 평일에 무슨 마을잔치냐고 하겠지만 한 마을에 마을회관을 새로 지어 준공식을 갖는 일만큼 큰 잔치가 있을까?

섬호마을은 도비 1억3천만원과 군비 5천만원을 합쳐 1억8천만원, 여기에 마을 자체기금을 들여 30년된 마을회관을 허물고 번듯하게 새로 지었다. 이 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해 주민들은 추진위원회(마을의 일꾼인 조현태 개발위원장 겸 어촌계장)를 꾸려 예산을 따내는 등 일을 성사시켰다.

지난 6월부터 공사를 시작해 이날 준공식을 갖는 마을회관은 총 부지면적 289㎡(87.4평)에 총건평 154.40㎡(1층 31.78평, 2층 14.9평), 할아버지방, 할머니방, 거실, 이장집무실, 남녀화장실, 샤워실, 주방, 다용도실을 갖추고 있다.(2층에도 별도로 방, 주방, 화장실, 샤워실이 있고 보일러실이 따로 있다.)

   
▲ 마을표지석.
주민들은 30년만의 경사를 자축하기 위해 준공식을 갖기로 하고 군내 각 기관 단체는 물론 이웃마을과 향우들에게도 초청장을 보냈다. 마을회관 준공식을 알리는 광고를 내기 위해 지난 19일 이른 시각 남해시대신문사를 찾아온 정연식(74) 이장은 일흔넷이라는 연세임에도 겸손한 말투에 늘 웃음을 달고 사는 표정이었다.

그는 “우리 마을 30년만의 경사를 축하해주기 위해 오시는 분들에게 점심 한 끼 대접하고 싶다”면서 “많이 찾아오시면 좋겠다”고 바랐다.

 

23일 마을회관 준공식
     
섬호마을 주민들은 도시에 나가 사는 향우들이 있어 무슨 일을 해도 마음 든든하다. 정연식 이장은 마을 자랑을 하기 위해 ‘재부남해섬호향우회’가 만든 책자를 하나 슬그머니 내밀었는데 그 책자를 한 페이지씩 넘겨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섬호마을 신축마을회관
지난 2006년에 발간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자에는 섬호마을의 유래, 역대 이장명단, 고향마을 집집마다 전화번호, 그리고 부산에 사는 향우들의 명단과 주소 전화번호를 가나다순으로 잘 정리해놓았는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명함광고까지 실려 있어 향우회가 얼마나 잘 운영되고 있는지를 한 눈에 알게 했다. 향우들은 나이별로 계모임을 꾸려 운영할 정도로 돈독하다.   

재부섬호향우회는 고향마을의 대소사에 빠짐없이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해마다 봄철에 여는 경로잔치에는 버스를 대절해 단체로 고향을 찾아와 부모님들에게 큰절을 올린다고 한다. 오는 23일 마을잔치에도 그들은 함께 할 것이라고 한다.
  
 

 

재부섬호인연합향우회 역대회장

초대 이상순 2001. 5. 13~
2대 이상순 ~2004. 4. 25  
3대 박인권 2004. 4. 25~2006. 4. 16
4대 박인권 2006. 4. 16~2008. 4. 20
5대 이대우 2008. 4. 20~현재      

재부섬호향우회는 마을의 자랑

주민들은 마을 버스승장강 안에 마을전경사진과 함께 마을의 유래를 적어놓았다. 처음에는 방포(傍浦)라고 불렀고, 방포라는 이름 속에는 적개 즉 갯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 담겨 있으며 토촌마을(토골) 너머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적개토골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1900년 경 마을 사람인 곽창우 씨가 군청에 근무하면서 방포를 섬호로 개칭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주민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을 왼편 바닷가 쪽에 있는 당산나무 앞에서 매년 음력 10월 15일 당산제를 지내왔다고 하는데 지금은 당산나무라고 할 만한 나무는 없고 밤무덤만 있다. 밥무덤이 마치 사람의 작은 무덤과 같이 잘 생겼다.

   
▲ 섬호마을 밥무덤.
요즘도 주민들은 당산제만큼은 정성들여 지낸다. 섬호마을은 당산제 고유의 전통을 가장 잘 지켜오고 있는 마을 중에 하나다. 주민들은 당산제를 잘 지내는 것으로 마을의 안녕과 복을 받는다고 믿는다. 섬호마을 주민들은 6.25 전쟁 동안 한 사람도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한 사람이 없었다고 전해오는 설도 당산제를 잘 지내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다른 마을에는 마을 사람끼리 연애결혼을 한 경우가 더러 있는데 섬호마을에는 중매결혼을 한 예는 있어도 연애결혼을 한 경우는 없다고 하며 다른 마을에는 흔한 다문화가족도 없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에는 젊은이들이 많아 청년회도 잘 돌아간다.       
  
당산제 전통 간직해온 마을

 

강진만 둘레를 잇는 해안도로를 따라 읍 토촌마을과 이동면 초양마을 사이에 있는 섬호마을은 선소마을과 같이 바닷가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산다. 옛날에는 부농도 많았는데 토촌이나 초양의 옥토는 섬호마을사람 거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 섬호마을 바닷가 전경.

바닷가에 가장 가까운 마을이면서 주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사는 마을의 특성은 배산임수형 지형에다 옆으로는 너른 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을 앞의 바다가 어선어업을 하기에도 양식어업을 하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바다를 통해서도 소득을 올리고 있다.

섬호는 토촌과 함께 토섬어촌계를 구성하고 있는데 약 40헥타르에 이르는 마을공동어장을 가지고 있다. 몇 년 전부터는 앞바다에서 돌꼬막 양식으로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겨울에서 봄까지는 자연산 굴을 채취해 판매하고 있는데 입소문을 통해 상당한 단골소비자들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바다가 점차 마을의 주요 소득원으로 자리 잡자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생겼다. 강진만을 죽 들러 85개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중 절반 가까이만 하수종말처리장이 지어졌다. 섬호마을은 바닷가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이지만 어업소득이 적어서인지 하수종말처리장 시설은 아직 없다. 돌꼬막 소득을 더 많이 올리려면 주민들은 하수종말처리장을 꼭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2006년부터 주민들은 군민과의 대화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하수종말처리장을 지어달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아직 소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몇 해 전 큰 이슈거리였던 선소마을로부터 연결되는 해안도로가 언제쯤 연결될 수 있을지도 주민들의 큰 관심사다.           

하수종말처리장 꼭 필요

섬호마을에도 최근 외지인이 빈집을 사서 살러 들어오는 경우가 늘어가고 있다. 읍내에서 가깝기도 하고 바다를 끼고 있어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주민들은 마을에 살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쉽게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있다. 

마을내 조씨, 박씨, 이씨, 채씨, 곽씨 문중에서 배출한 마을을 빛낸 인물들이 많지만 여기서 다 거론하기는 힘들다. 다만, 최근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일본 카나가와 한국종합교육원장으로 뽑혀 전국적인 뉴스인물이 된 조현종 씨의 경우 이 마을에서 친환경유자농장 경영으로 잘 알려진 고 조혁래 씨와 김권순 씨의 4남2녀 중 막내다. 그의 어머니 김 씨는 지난 2월, 본지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는 글을 보내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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