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민속놀이

남면 석교 줄싸움

작성일
2010-07-06
이름
관리자
조회 :
1730
(1) 유래

석교마을은 남해안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앵강만을 마을 앞에 두고 있다.석교라는 마을
명칭이 있기 전에는‘장승’이라고 하였는데 마을 입구에 벅수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벅
수는 단순한 경계표나 이정표 역할과 함께 잡귀와 질병으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여 주었고 장승제를 모셔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마을의 액을 밖으로 몰아내고 마을을
정화시켰다.
세종13년(1431)의 기록을 보면“남해도 남쪽의 바깥쪽 가화포·고을포에 사는 백성들이
경작하는 우현 안쪽 평산 영전의 한 곳의 전토를 평산만호에게 수호하게 하여 내왕하면서 경
작하게 하고 그 우현의 바깥쪽 대양 주변의 전토는 백성들이 개간하여 경작하는 것을 금하소
서”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라고 하였다.
줄 싸움의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민속행사 말살정책에 의하여 중단
되었다. 해방 후 다시 시작되었으나 이농현상으로 주민들이 줄어들어 차츰 사라지는 것을
마을 촌로들이 뜻을 모아 옛날 형태로 복원하였다. 민속놀이의 형태를 보아 정월 대보름날
을 기하여 마을의 안녕을 비는 것은 물론 왜구의 침입이 잦았기 때문에 마을 보호를 위한 민
속놀이로 마을민이 단합하는 군사의 진(陣)형태를 갖추고 있다. 남면석교 줄싸음은 박현국
(석교 출신 수필가)에 의해 발굴되었다.


(2) 특징

일반적인 줄다리기와는 진행 과장이 다르다. 정월 대보름이 되기 3일 전쯤에 먼저 석교마
을에서 고가 달린 큰 줄을 만들어 인근 마을인 월포, 두곡, 우형, 홍덕, 홍현마을을 순회하면
서 우리와 줄 싸움을 하자고 시비를 걸면 각 마을에서는 각기 고를 한 개씩 만들어 정월 대
보름날 석교마을 앞 제일 넓은 논으로 모인다.
각 마을 별로 순번을 정하는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인근마을에 시비를 걸어 뱀이 서로 엉
키는 형태가 되는데 이때 서로가 안에서 조이지 않으려고 고를 바깥쪽으로 돌리면서 흥을 북
돋운다. 만약 이때 안으로 사로잡히면 줄다리기를 포기하고 다른 편을 응원한다. 결국은 2편
만 남으면 고를 빗장치고 줄다리기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3) 진행과장

① 제1장 장승제 및 고 제작
마을주민들은 마을회의를 1주일 전에 개최하고 재관을 선정한다. 주민들은 고 제작을 위
하여 짚을 모은 후 대보름 3일전까지 고를 제작한다. 정월 대보름 당일 날 장승 앞에서 장승
제를 지낸다.
② 제2장 인근 5개 마을에 줄 싸움 권장
석교마을에서는 대보름 3일전에 이미 만들어진 고를 메고 풍물을 울리면서 인근마을인 월
포, 두곡, 홍덕, 우형, 홍현 마을을 차례로 돌면서 대보름날 줄 싸움하자고 시비를 걸며 약을
올린다. 그러면 각 마을에서는 마을회의를 열고 고를 제작한다.
③ 제3장 줄 싸움
6개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각 마을에서 만들어 놓은 고를 메고 석교마을 앞
제일 넓은 논을 향하여 노래를 부르고 풍물을 앞세워 모이게 된다. 모이면서 상대편들의 사
기를 염탐하고 자기 팀보다 약하다고 느껴지는 상대를 골라 즉시 돌진하여 줄 싸움을 한다.
6팀중 3팀은 이기고 3팀은 지는데 진 팀은 재도전을 하지 않고 자기마을과 가까운 마을을
응원한다.
이긴 3팀 중 주관한 석교마을을 제외하고 2팀이 승부를 가리게 되면 석교팀과 이긴팀은 줄
다리기로 들어간다. 이때 역시 진 팀은 자기마을과 사이좋은 마을팀에게 가서 응원을 한다.
④ 제4장 대동놀이
줄다리기가 끝나면 6개 마을은 승부에 관계없이 각 마을에서 장만하여 온 음식을 들면서
하루 종일 춤을 치며, 흥겹게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