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창선 상여놀이
- 작성일
- 201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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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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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50
(1) 유래
전통사회는 신분 사회였기에 입는 의복이나 사람이 타는 가마까지도 신분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사람의 죽음에 임해서는 차등을 두지 않았다.『사례편람』에 이르기를“대여(大
轝)를 사용하면 정말로 좋으나 가난한 사람은 쉽게 구비할 수 없는 점이 있으니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을 따라서 사용해도 무방하다”라 하였다.
또한 고구려 장례 풍속에는 죽은 사람을 산 사람처럼 기쁘게 해서 보내는 전통도 있었
다.『수서(隨書)』고려전(高麗傳)에“초종(初終)에는 곡을 하며 울지만 장례를 치를 때는 북
을 치며 춤추고 음악을 연주하며 보낸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남해의 장례 풍속 중 호상일 경
우 위와 같은 행동을 하기도 하였다.
후송 유의양(1718~1788)의 남해문견록에“어버이의 장례를 모실 때에 수일 전을 기하여
집에 차일을 치고 술과 고기를 많이 장만하여 동리 사람들을 모아 각별히 많이 먹이고 무당
과 경재인을 모아 아침부터 밤이 되기까지 굿을 하고 새벽에 발인하여 갈 때에 북과 장구를
치며 피리와 저를 불어 상여 앞에 인도하여 산까지 가니……” 앞 내용과 같이 남해 장례행렬
에 악공들이 실제로 악기를 연주하였다.
상여 역시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전립을 쓰고 철릭을 입은 악공과 광대 꼭두들인데
이것은 감사나 지방 수령 등의 행차에 동원된 악공 또는 광대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남해에서는 출상 하루 전 날에“헛 상두어르기”를 한다. 이것은 출상 때 망자를 장지까지
편안하고 기쁘게 모시기 위해 상두꾼들이 미리 연습을 하는 것으로 출상일과 같이 풍물을 울
리고 사위를 상여에 태워 어르기도 하며 마을을 한 바퀴 돈다.
이러한 장례의식은 전국에서도 드문 풍속으로로 보존 가치성이 아주 높아 전통 민속 문화
로 계승되어야 할 중요한 문화이다. 창선면 단항이에 거주하는 김치구에 의해 발굴, 2005
년에 재현하였으며, 손태도(서울대 교수)의 고증과 정의연(향토민속연구가)의 연출 지도로
2005년 경남 민속예술축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2) 남해 목상여의 특징
남해의 목상여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부터 1980년대 초반으
로 마을 상여집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거의 사라지고 일부 상인들과 수집가들이 구입하여 군
외로 반출되었다.
각 마을에는 상여계가 조직되어 대부분 마을마다 상여집이 있었으며, 큰 마을에는 두서너
채, 작은 마을은 두서너 마을이 합하여 한 채를 보관 관리하면서 출상 때 사용하였다.
남해 목상여의 특징은 상여가 화려했으며 하단부터 상단까지 꽃, 동자·악공꼭두, 봉, 용,
저승사자 등이 단청으로 장식되었다. 목재는 수양버들이나 냇버들로 원통나무를 이용하여
수공으로 제작되었다.
남해 목 상여는 예술적으로도 가치가 높고 민속자료로도 연구대상이 되었으나 현존하는
상여가 없어 마지막 상여 제작기능보유자 유천준(남해읍)의 고증과 도면을 바탕으로 복원하
였다.
(3) 남해 상여놀이
호상일 때 전해져 내려오는 장례 풍속으로 망자를 기쁘게 보내드리기 위해 놀이가 곁들여
진 상례이다. 진행과장은 헛상두 어르기→발인→출상→마을 안길돌기→사위 상여 태우기→
외다리 건너기→비탈길 오르기→하관→뫼다지기 등으로 진행된다.
상여 행렬 앞에는 풍물과 악기 연주자가 연주를 하면서 상두꾼들의 발을 가볍게 해 주고
앞소리꾼도 꽹과리를 치면서 상여소리를 하는데 주로 반야심경, 회심곡 등을 인용하지만 망
자와 관련되는 사설도 읊는다. 2005년에 남해군 창선면 단항마을에서 보존회(회장 김치구)
가 결성되어 상여놀이를 재현하여 보전되고 있다.
(4) 상여놀이 특징
첫째, 호상일 때, 하루 전날 상두꾼들이 헛상두 어르기를 한다.
둘째, 호상일 때, 슬픔보다 잔치 분위기이다.
셋째, 무당과 경재인이 하루종일 경을 읽고 굿을 한다.
넷째, 발인할 때 풍물과 악공을 앞세우고 장지까지 인도한다.
다섯째, 망자 사위를 상여 채 위에 세우고 망자의 노잣돈을 새끼줄에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