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설화,민담

해상사호(海上四晧)

작성일
2010-07-06
이름
관리자
조회 :
1316
황악산 직지사 유정(惟政:사명대사)이 보월(유정이 신세진 분의 딸)과의 애욕으로 세속과
인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직지사에서 축출 당하였다. 그러나 선종판사 보우는 유정의 무죄를
가려서 전국 사찰에 통고하여 유정을 찾게 하였다. 한편 보월은 자신의 잘못으로 유정이 축
출 당하자 유정의 스승이신 신묵화상(信黙和尙)에게 잘못을 빌고 비구니가 되어 일심으로
참회하였다. 어느날 신묵화상의 부름을 받은 보배는 주지스님이 계신 곳으로 가 보니 신월
비구니와 보운(유정의 누님), 보련스님(유정 은사의 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신묵
화상은 눈을 감고 있다가 말했다.
“ 너희들은 지금부터 관세음보살을 부르며 남쪽으로 가서 남해 금산 보리암으로 찾아가거
라. 그곳에는 너희들을 잘 지도할 분이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신월스님은 수고롭겠지만 저
애들을 데리고 금산 보리암을 찾으시오. 관세음보살님은 꼭 남해 금산에만 계신 것은 아니
지만 저 애들은 그곳에 인연이 있으니 그렇게 아시고 곧 떠나시오.”
신월스님은 하직 인사를 드리고 보운, 보련, 보월스님을 데리고 절문을 나섰다. 신월스님
일행은 거창, 안의, 함양, 산청, 하동을 거쳐 남해 금산 보리암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
다. 산중턱을 지나니 계곡이 있기에 세수하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한참을 오르니 쌍동굴
이 나란히 앞을 막아섰는데 왼쪽 동굴로 사람들이 오르내린 흔적이 있어 그 곳으로 들어가니
넓은 반석이 있고 작은 굴 사이로 맑은 물이 샘솟았다.
동굴의 천장은 일부 뚫어져 하늘이 보이고 큰 문짝만한 곳으로 들어가면 둘째 동굴인데 오
른쪽은 터져 있으며 위는 막혀 있고 앞이 트여 있어 나가니 절벽 옆으로 좁은 길이 나타난
다. 길 오른쪽 아래에 평지가 있다. 그곳에 음성굴이 있고 만장 높이의 절벽 가운데 동굴문
이 보이니, 이곳이 관음굴(용굴)이다. 좌우의 석벽이 하늘을 치받고 있는 듯하다.
그 위에 사찰은 없고 아담한 암자가 있어서 주지승을 찾으니 중도 아니고 속인도 아닌 분
이 나왔다. 머리에는 털이 없고 양쪽 귀 위로만 하얀 눈빛 같은 털이 귀를 내려 덮고 눈썹도
하얗게 세었다. 눈빛은 초롱초롱하고 얼굴은 어린애 같았으며 흰 수염은 배꼽까지 내려져
있는 분이였다. 이분은 신월비구니 일행을 반갑게 환한 웃음으로 맞으며 말했다.
“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그 옛날 원효대사께서 창건한 보광사는 왜갈바람에 파손되
었고 왜구의 약탈이 극심하여 폐한지 오래되어 관음의 성지로 보리암을 두어 오늘에 이르렀
소. 절에는 스님이 아니 계시기에 불초가 이 암자를 보살피고 있으니 허물하지 마시오.”
신월스님은“노사님 자비를 감축 하나이다”하고 합장배례하니 보운, 보련, 보원스님도 따
라서 합장배례하였다.
세월은 흘러 어느 봄날. 백팔염주 목에 걸고 연꽃을 왼손에 쥔 세 여승이 아름답고 우아한
승복차림으로 사뿐사뿐 걸어가니 날씬한 몸매, 영롱한 눈빛, 백옥 같은 얼굴은 천상에서 하
강한 선녀들 같았다. 이들은 음성굴에 이르러 관세음보살 구생경을 읽으니 청아하고 낭낭함
이 높은 절벽을 넘고 넘어 메아리쳐 가는 듯하다. 한참 후 세 여승은 관음굴에 들어서서 관
음보살상을 모신 앞에 단정히 굻어 앉아 염불 삼매에 몰입하니 지고지순의 경지에 이르렀
다. 하루는 노사께서 원효대사가 지은 글을 낭송하였다.
“푸른 솔, 깊은 골, 높은 산, 뿌리 높은 바위는 수행하는 자의 깃들일 바다”“배고프거
든 나무 열매 주워 먹고 굶주린 창자 위로하며 목마르거든 흐르는 물 마시어 갈증을 면케하
라”“소리 높이 돕는 바위로 염불당을 삼고 슬피 우는 오라새로 마음을 기쁘게 하는 벗을 삼
을지어다”
신월스님과 세 여승의 수도 고행을 돕는 데 구구절절 가슴에 새겼다. 노사는 평소 밥을 먹
지 않고 조석으로 계란만한 황약과 냉수를 마실 뿐이지만 민첩하여 동에 있는가 하면 서에
있고 며칠씩 산 속을 벗어나 있지만 언제 왔는지 암자에 있기도 하여 세 여승은 신월스님께
여쭈어 보았다.
“ 노사님은 불교와 도교 그리고 유교에 통달하신 분 같고 전후생의 숙명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계신단다. 아무쪼록 노사님의 가르침에 열과 성을 다하여 수도에 정진, 관음보살님의
친견 소망을 이룩하여라!”
신월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염불에 몰입하였다. 그 후 세 여승은 뼈와 살을 깎는 고행 수도
끝에 공적삼매에 돌입한 후 파랑새의 인연으로 현재 의식으로 돌아왔다. 이를 지켜본 노사
는“너희들이 이제 관음대성(觀音大聖)의 법신을 보았더냐! 더욱 정진하여라!”하였다.
세 여승은 엎드려 절한 후 보운스님이 노사께 여쭈었다.
“ 노사님. 참으로 전생과 후생이 있사옵니까?”
“ 너희들이 관음대성의 법신을 보았으면서 어찌 그런 것을 묻느냐? 법신이 근본적으로 생
멸이 없거니와 어찌 전후생이 있겠느냐? 업보신은 인연 따라 생멸이 있으니 어찌 전후생이
없겠느냐. 법신은 바닷물과 같고 업보신은 바다 위의 파도와 같으니라. 바다 물은 근본적으
로 생멸이 없건만 파도는 바람의 인연 따라 생멸이 있나니라. 너희들은 옛날 연화도인(蓮花
道人)의 제자 성운(性雲), 성연(性蓮), 성월(性月)이 스승의 죽음 앞에 맹세하기를 후세에도
다시 스승으로 뫼시겠다는 그 업보의 인연으로 인도 환생한 것이다.”
노사는 관음굴을 나섰다.
굽어보니 동으로 통영, 두모도, 욕지도, 연화도 등이 가물가물 손짓하여 상주포에서 어선을
빌려 타고 연화도에 이르니 뱃사공이 말했다.
“ 저 봉우리 동쪽 석벽이 있는 곳에 굴이 있는데 옛적 연화도인이 그곳에서 공부하다가 제자
에게 내가 죽거든 내 시신을 바다에 던져 고기밥이 되게 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입적했답니다.
제자들이 유언대로 시신을 바다에 던졌더니 연꽃 한 송이가 솟았다 하여 연화도라 하였다고
전해 옵니다.”
신월스님 일행은 뱃사공이 일러 준 곳으로 가보니 그렇게 찾고 찾던 유정선사가 그 곳에 좌
선하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만남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유정선사가 좌선하는 곳에서 다섯 발
짝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비석이 있었다. 그 비석에는 연화도인 입적지처라 새겨져 있고 그 후
면에 제자 성운, 성련, 성월이라 새겨져 있었다. 세 여승은 보리암 노사님의 도력이 대단하신
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유정선사는 만남의 기쁨을 웃음으로 맞으며 말했다.
“ 보운누님, 그리고 보련, 보월스님 불법이란 참으로 오묘한 이치가 있는 것을 이제 깨달았
습니다”
세 여승은 감격하여 유정선사의 무릎 앞에 쓰러져 눈물로 쌓였던 수많은 이야기와 응어리
를 풀었다. 신월스님은 이들의 해후(邂逅)를 미리 짐작하신 직지사 주지 신묵화상의 깊은 뜻
을 알고 직지사 쪽을 향하여 합장배례하였다.
바다는 고요하고 휘영청 밝은 달밤에 해상사호 일행이 동자를 앞세우고 유정과 신월스님
일행 앞에 나타났다.
“ 아! 젊은 스님들 오셨소!”
보리암 노사님과 노사님 모습을 한 세 분 도사님께서 자애로우신 눈빛으로 맞아 주었다.
신월스님 일행은 노사님을 뵙고 합장배례한 후 유정선사를 만나게 된 경위를 설명하였다.
노사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 이제야 그리운 사람끼리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반가우냐”
세상사에 달관한 노사는 이들의 전후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노사는 다른 세 분
도사께 신월스님, 보운, 보련, 보월스님을 소개한 후 유정을 소개하였다.
“ 이 분은 유정선사이온데 성종 과거시험에 장원한 직지사 신묵화상의 제자로 보광산과 연
화도인 그리고 보운, 보련, 보월스님, 신월스님 등 모든 사람과 인연이 있어서 오늘 자리를
같이하게 된 것인 즉, 세 분 조장님께서 귀엽게 봐 주시기 바랍니다.”
노사가 허리를 굽혀 예를 취하자 키가 커 보이는 도사가 말하였다.
“ 얘 동자야. 오늘 같은 기쁜 날 한 잔의 술이 없을소냐, 너 배에 가서 술을 가져 오너라. 관
음대성께서 맺어준 인연, 즐겁게 하자꾸나”
동자가 가져온 술병을 자세히 보니 연한 초록색 빛 병이었다. 동자는 술병을 들어 차례로
도사들에게 한 잔씩 권한 뒤에 유정선사 앞에 술잔을 내밀었다. 유정은 손을 저어 거절하였
다. 보리암 노사가 다시 권하였다.
“ 유정선사는 사양치 말고 어서 그 잔을 받으시오. 이 술은 속세 인간의 술이 아니고 신선
들이 마시는 무병장수하는 선약이니 네 분 여스님에게도 한잔씩 마시도록 하시오.”
유정이 잔을 들어 마신 후에 신월, 보운, 보련, 보월스님도 동자가 따라주는 신선주를 마
셨다. 술을 마시니 머리가 맑아지고 배고픔이 없어지며 새로운 힘이 생기는 듯하였다. 이들
은 글 짓고 노래하며 춤도 추면서 한참 즐기니 얼굴이 둥글게 생긴 도사가 떠나기를 재촉하
였다.
“ 자 이제 밤이 깊었으니 떠나기로 하지.”
세 도사 중 키가 작고 몸집이 큰 도사가 동자를 불렀다.
“ 얘야 너 준비해 둔 하늘색 술병을 노사님께 가져다 드려라”
동자가 두 개의 병을 가지고 와서 옆에 있는 노사께 드렸다. 노사는 이 술병을 보련, 보월
스님에게 주면서 당부했다.
“ 이 신선주를 너희들 부모님께 드려라. 그간의 불효를 빌고 수도에 정진하여라. 그리고 유
정선사와의 인연의 빚도 갚는 셈이니 요긴하게 쓰기 바란다.”
유정은 합장배례하고 물었다.
“ 노사님, 노사님의 존호와 세분 도사님의 존호는 뉘시라 뫼시오리이까?”
“ 존호……. 존호라 이름을 알아 무엇하리, 어서 바삐 떠날 차비를 하여라.”
이 때 신월스님이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 노사님 저희들 일행은 내일 배가 이곳에 오기로 되어 있습니다. 어찌 하오리까?”
“ 걱정 말고 이 배에 오르시오. 우리들과 같이 유정선사의 고향으로 가는 것이니 아무 염려
마시오.”
노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니 모두 배에 올랐다. 배는 손쌀 같이 날아 가덕도를 거쳐 김
해, 낙동강, 웅천서재에 이르렀다. 웅천서재에 배를 대어 유정선사와 신월스님 일행을 내려
준 후 해상사호가 탄 배는 바다 멀리 사라졌다.
이 때가 1570년이었다. 배에서 내린 유정선사와 신월스님 일행은 고향가는 길이기에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말없이 걷고 있는데 보련스님이 물었다.

“ 스승님, 저 네 분의 신선들은 어떤 분들이옵니까? 그리고 우리들을 보살펴 주고 가르쳐
주신 보리암 노사님의 은혜도 태산 같사옵니다. 존함도 모르고 지내온 것이 한스럽습니다”
신월스님은 해상사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당부했다.
“ 내가 어릴 때 노장스님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남해 바다 위에 해상사호가 계시는데 세상
의 부귀공명을 다 버리고 숨어서 사는 신선들이라고 불리고 있었지. 해상사호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계도하고, 인륜도덕을 가르치며, 불의를 미워하고, 해상 도적인 왜구의 약
탈을 막으며, 가난하고 착한 사람을 도와주는 분들이야. 불교와 도교, 유교에 통달하여 경세
학과 천문, 지리, 의학에 밝은 신선이 계신다고 전설처럼 전해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이 있는데 아마도 우리가 특별한 기연이 있어서인지 관세음보살의 자비인지는 모르나 이 분
들의 이야기는 절대로 바깥 세상에 알려서는 아니되니 만남의 비밀을 간직하여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정이 물었다.
“ 신월스님께서는 해상사호님의 존함을 알고 계시나이까?”
“ 예 짐작하건데 보리암 노사님은 해은(海隱)이시고, 키가 크고 얼굴이 긴 분이 어은(漁隱),
얼굴 모습이 둥글게 생긴 도사가 조은(釣隱), 키가 작고 몸집이 큰 도사가 도은(島隱)이라 짐
작됩니다."
그들의 걸음이 빨라졌다.
그 후 4명의 비구니 스님들은 해상사호에게 배운 천문.지리.병법 등을 활용하여 이순신 장
군을 도와 남해바다를 지켰다는 설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