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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공원

정지공원

정지공원은 해도도원수 정지장군의 일대기와 관음포대첩 기념비가 마주보고 있으며 그 아래 와비에는 자세한 설명이 음각되어 있다. 관음포만이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하여 600여 년 전 왜구의 수탈에 신음하였던 선조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1358년 공민왕은 왜구의 침탈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공도정책을 펼쳐 남해의 행정관서가 지금의 하동군 북천면으로 옮겨 있을 때여서 큰 피해는 없었다. 남해는 48년 후인 1406년(조선 태종 7) 남해현성이 축성되면서 다시 복원되었다.

해도도원수 정지장군(海道都元帥 鄭地將軍)

정지(鄭地 1347~1391) 장군의 초명은 준제(准提), 본관은 하동, 나주 출생으로 용모는 괴이하고 성품이 관후하였으며, 책 읽기를 좋아했다. 1365년(공민왕 14) 19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중랑장, 예의판서, 순천도병마사, 전라도순문사, 해도원수, 해도도원수, 문하평리, 판개성부사 등을 지냈으며, 24회 이상의 전쟁에서 승전하여 11번의 포상을 받았다. 1383년(우왕 9)에 남해 관음포대첩에서 왜구를 대파한 뒤 해도도원수(현 해군참모총장), 양광·전라·경상·강릉도 도지휘 처치사가 되었다.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 때,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동조했지만, 1389년(공양왕 원년)에 김저의 옥사에 연루, 계림·횡천·청주에서 유배 생활하던 중 1391년(공양왕 3)에 무죄로 석방되어 위화도회군 2등 공신에 책록되었다. 그해 10월에 45세의 일기로 광주 자택에서 병사했으며, 시호는 경렬(景烈)이다.

관음포대첩(觀音浦大捷)

최영의 홍산대첩, 나세의 진포대첩, 이성계의 황산대첩과 함께 고려말 왜구를 무찌른 4대첩으로 불린다. 정지장군의 관음포대첩(1383년, 우왕 9년)을 고려사에는 상세하게 기록 하고 있다. "적의 큰 배가 120척인데 한 척에 강한 군사 140명씩을 태워 선봉으로 삼았다. 정지가 47척의 전선을 이끌고 나가 쳐서 크게 깨뜨려 버리니 뜬 시체가 바다를 덮었고 또 남은 적을 쏘니 활 시윗줄 따라 모두 거꾸러졌다. 드디어 크게 패배시키고 화포를 쏘아 적선 17척을 불태웠다." 정지는 "내가 일찍이 왜선을 많이 격파 한 바 있으나 오늘같이 통쾌한 적이 없었다"라고 하였다. 현재 남해군 고현면 탑동마을에는 당시 관음포대첩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남해지역 주민들이 손수 돌을 깎아 만든 것으로 전해지는 정지석탑(경상남도 문화재자료 42호)이 남아 있다.

담당부서 :
관광진흥과 관광시설팀( 055-860-8651)
최종수정일 :
2020.11.18 10: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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