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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와 유배문학

작성일
2016-02-01 16:49:41
조회수 :
599
용량 :
14.2 MB
여기 초점을 받으면 키보드 화살표 상(↑)·하(↓) 키로 대본 스크롤을 할 수 있습니다. 남해와 유배문학
남해와 유배문학

BGM> 밝고 경쾌한 톤의 음악

남해유배문학관을 찾아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저는 남해의 대표 유배객, 김만중입니다. ‘유배문학’이 낯설게 느껴질 여러분을 위해 유배문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저를 잘 따라오세요.

유배문학은 남다른 탄생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배객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낯설고 먼 곳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유배지의 열악한 환경과 힘들고 외로운 생활 속에서도 유배객은 자신의 혼을 열정적으로 문학작품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유배문학입니다

그러면 남해 유배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들로는 누가 있을까요. 남해의 대표적인 유배객으로는 「구운몽」을 지은 저 서포 김만중이 있고, 「화전별곡」으로 남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자암 김구, 「남해문견록」을 저술한 후송 류의양 등이 있습니다. 그럼 이들의 작품에 대해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서포 김만중은 숙종 15년에 남해로 유배 왔습니다. 후궁 장희빈으로 인해 상감께서 정사를 그르칠까 걱정하여 그 잘못을 고한 탓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지게 된 어머니의 근심을 달래드리고자 지은 것이 바로 「구운몽」입니다. 이후 「사씨남정기」를 집필하여, 흐려진 임금의 마음을 되돌리고자 하였지요. 「사친시」는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지은 칠언절구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의 정서를 고스란히 담았습니다.
BGM> 나른하고 슬픈 분위기

저 김만중이 작품 속에서 유배객의 슬픔을 표현한 것과는 달리, 자암 김구는 남해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였습니다. 자암 김구는 남해 노량에서 13년간의 긴 유배생활을 했습니다. 20세에 생원 · 진사 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하고, 조선 전기 4대 서예가의 한 사람으로 뽑히는 등 뛰어난 인물입니다. 그러나 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 등과 함께 투옥되고, 지금의 경북 김천인 개령에 유배되었다가 남해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남해찬가’라고 불리는 「화전별곡」은 6장으로 구성된 경기체가로, 개인적인 생활을 쓴 작품이라는 점에서 경기체가의 변천기에 해당하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자, 지금까지 저 김만중과 자암 김구의 유배문학 작품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다음은 또 다른 남해 대표 유배객인 후송 류의양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후송 류의양은 조선 영조 때의 문신으로, 관직을 박탈당하고 남해로 유배됩니다. 유배생활 중에 쓴 「남해문견록」은 최초의 한글 유배기행문으로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남해문견록」을 통해 남해의 풍속과 언어, 명승지 및 남해 서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어려운 유배생활 속에서도 기록을 상세하게 한 점에서, 류의양이 근면 성실한 인물임을 알 수 있지요. 류의양은 약 5개월의 유배생활을 마친 뒤, 공조참판으로서 「춘방지」, 부총관으로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저술하는 등 활발한 집필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밖에 남해 유배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약천 남구만, 소재 이이명, 태소 김용이 있습니다.

약천 남구만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서예가로, 숙종 5년에 남인을 탄핵하다 남해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생활 동안 쓴 「제영등금산」, 「등망운산」등에는 남해의 절경 앞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작가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또한 「영유시 이십수」는 유배지에서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남해 일대를 유람하면서 20수의 시로 유자를 읊은 작품입니다.

소재 이이명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로, 뛰어난 학식을 자랑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기사환국을 당해 영해를 거쳐 남해현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장인인 김만중이 귀양살이로 머물던 곳을 찾았다가 주인을 잃고 시들어가는 매화나무 두 그루를 보았지요. 이를 자신의 적소로 옮겨 심었더니 금세 다시 살아났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쓴 것이 「매부」입니다.

태소 김용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로, 후송 류의양과 비슷한 시기에 남해로 유배되었습니다. 부친의 죄를 대신하여 반년 간 유배생활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김용은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남천잡록」을 저술하였습니다.

남해의 유배객은 약 200명 가량으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작품의 다수는 후대에 전해지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BGM> 웅장하고 감동적인 음악
남해에 머물렀던 유배객의 삶 속에서 피어난 예술혼과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문학작품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깨달음과 감동으로 영원히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담당부서 :
문화체육과 문화예술팀( 055-860-8621)
최종수정일 :
2020.09.17 14: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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