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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에 남쪽 변한(弁韓)의 12개 부족 국가중 군미국(軍彌國) 또는 낙노국(樂奴國)에 속하였다고 추측하고 있다.
삼한시대를 거쳐 가야연합시대에는 6가야 중 지리적 여건으로 보아 현 진주 관할인 고령(古寧)가야에 속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남해군이 사적자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신문왕 7년(687)이다. 신라는 남해도를 전야산군(轉也山郡)이라 칭하고 청주(靑州: 現 晉州) 관할에 두어 태수(太守)를 지방장관으로 하여 2개현(蘭浦縣, 平山縣)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그 후 경덕왕(景德王) 16년(757년)에 단행된 지방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라 남해군(南海郡)으로 개칭되었고 강주(康州 : 靑州 개칭)에 속하였다.
고려 8대 현종 9년(1018년)에는 대대적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하여 본 군을 남해현이라 개칭하고 현령을 두었다. 그 후 고려말기부터 왜구들이 남해안 일대를 통하여 약탈살상을 자행함에 따라 남해현은 정상행정 수행이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31대 공민왕조(1351~1353년)에는 진주관내 대야천(大也川 : 鐥川) 부곡으로 행정 관서를 옮기는 사태까지 생겼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3대 태종13년 (갑오 1413년)에 행정개혁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남해현은 일시 하동(河東)과 병합하여 하남현(河南縣)이 되었다가 하동현(河東縣)이 독립함에 따라 진주의 금양부곡과 합쳐져서 해양현(海陽縣)이 되었고 그 후 금양(金陽)이 진주(晉州)에 병합됨에 따라 남해현으로 복귀되었다.
당시의 행정관할은 경상도 우도에 속했으며, 종2품의 경주부윤 정3품의 창원대도호부사(昌原大都護府使), 정3품의 진주목(晉州牧) 밑에 종5품 현령(縣令)의 소관으로 되어 있었다. 그 후 7대 세조 원년에는 지방 방위조직을 일신하고 동12년 (1446)년 에는 관제개혁과 더불어 남해지방군은 진주진관진주목사인 첨절제사(僉節制使) 휘하에 남해현령이 절제도위(節制都尉) 급위(級位)로 관장하고 있었으며, 한편 수군(水軍)은 제포진관(제포진관) 웅천첨사(熊川僉使) 휘하에 평산포만호(平山浦萬戶)가 관장하고 있었다. 선조 25년(1592년)부터 임진.정유왜란의 전란지로서 7년간은 거의 무인지경이 된 적도 있었다. 고종 32년(1895년)에 남해현은 남해군으로 개칭되었고, 1906년에는 진주목에 속해 있던 창선도가 남해군으로 편입되어 8면으로 되었다.
1973년 이동면(二東面)의 갈도(葛島)가 통영군에 편입되었고, 1979년 남해면은 읍(邑)으로 승격되어 1읍7면이 되었으며, 1986년 4월 1일 이동면 상주출장소가 상주면으로, 삼동면 미조출장소가 미조면으로 승격되어 1읍9면이 되었다.